정신 차려보니 베트남이었다!
진짜 베트남인가요?

2023년 4월 중순. 오후 2시. 베트남 에어라인 VN409편.
비행기 창밖으로 호치민시 시가지가 눈에 들어오자 비로소 내가 무슨 짓을 벌였던가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호치민에서부터 하노이까지 베트남 전체를 통틀어 가장 끝내주는 외국어교육 플랫폼을 만들고 중동에 진출할 거라며 라오꽁 앞에서 큰소리를 팡팡 쳤었는데. 막상 베트남 땅이, 아파트가, 자동차가, 심지어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까지 구체적인 윤곽으로 시야에 잡히기 시작하자 언제부터였는지 또렷한 현실감이 뒷덜미를 조여오고 있었다.
‘진짜 와 버렸다!’
최종 피칭에서 대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4개월 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해 보겠다고 베트남 땅에서 뽀짝거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카데미 교육생에서 창업 도전까지
메타버스 기술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아카데미의 최종 피칭에서 ‘한국어교육 플랫폼’ 프로젝트를 베트남 학회에 가 발표하겠노라고, 실제 베트남에서 이 모델을 사업화해 보겠노라고, 심사 역 앞에서 호기롭게 피칭을 할 때는 나조차도 반신반의했었는데. 뱉는 대로 된다고 이게 이렇게 진짜로 와 버릴 일인가. 새삼스럽게 8년여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메타버스를 배우겠다고 찾아 들어간 아카데미에서의 8개월부터 최종 피칭까지, 베트남 학회에서의 발표부터 대학 강사 계약 체결까지. 마치 커피 10잔을 한꺼번에 때려마셨을 때처럼 두 발을 5CM쯤 공중에 띄운 채 현실감 없이 달려온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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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호치민 상공에 이르러서야 지난 1년 동안 잊고 살았던 무서우리만치 진한 현실감이 온몸을 덮치고 있었다.
‘아, 나 이제 어떡하지?’

베트남 대학 교수, 온라인 한국어 강사, 베트남 어학당 학생 그리고 예비 창업자
2월 베트남 학회에서의 인연으로 베트남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면서 나는 제법 안정적으로 베트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10년 전 중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는 정말 등록금만 가지고 갔던 터라 하루에 7원짜리, 10원짜리, 12원짜리 토마토계란덮밥, 계란볶음밥, 란조라미엔 등을 먹으며 버텼었는데,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하루 세 끼 굶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해 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10년 전이었다면 시작도 전에 쫄아서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했었겠지만, 이제 나는 직장생활도 8년이나 해 보았고, 퇴사를 하고도 생존할 수 있게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고, 베트남에서 직장도 있으며, 창업을 시도 해 볼 얼마간의 돈도 쥐고 있다. 해 보자! 일단 시작하고 뛰면서 방법을 찾아보자.
‘일단 시작하면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방법을 찾으며 앞으로 밀고 나갈 근거가 생기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베트남을 어떻게 가요?
프로젝트를 가지고 진짜 베트남에 가서 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거길 어떻게 가느냐고 했다.
“비...비행기 타고 가죠!”
“아니, 그러니까 거길 가서 뭘 어떻게 할 거냐고요.”
“가면 길이 보일 거예요.”
정말이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해 지레 겁먹고 미리 걱정하기에는 인생이 참으로 짧다. 살면서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가는 삶은 축복에 가깝다.
10년 전 중국에서의 유학 생활에 비하면 에어비엔비, 그랩, 인터넷뱅킹, 트래블월렛, 온라인쇼핑몰, 로밍, 온라인 강의, 전자책, 구글번역기, 파파고 등 각종 서비스가 발달한 오늘날, 해외에 나가 도전하지 않는 것은 자기 앞에 놓인 새로운 길을 스스로 접어두는 행위이다. 10년 전에는 인터넷뱅킹이 불편해 현지 통장을 개설하느라 애를 먹었고, 숙소를 구하려면 반드시 현지인을 찾아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쓰면서 살 집을 구해야 했으며, 한국어로 된 책을 보려면 지인에, 지인의 친구에, 그 친구에 친구까지 묻고 물어서 겨우 몇 권을 받아 아껴서 읽곤 했었지만 지금은 몇 권이고, 몇 백 권이고 오늘의 베스트셀러를 전자책으로 손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번역은 또 얼마나 편한지. 10년 전에는 말을 못하면 학교 식당을 벗어날 수가 없었고, 하루 세 끼를 그저 컵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텍스트 번역은 물론, 음성 번역에 이미지 번역까지 되니 어디를 가나 언어 때문에 고달플 일은 없다.
해외에서 살아도 괜찮다. 해외에서 도전해도 괜찮다. 이 괜찮은 길을 오늘부터 무겁게 걸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