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학교
한국에서 베트남어 코스를 알아보던 중에 유학원으로부터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학교가 연세대, 고려대 수준의 학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 랭킹을 봐야 검증이 되겠으나 한국어 학계 논문이나 학회 발표자들을 보아도 수준 있는 학교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해외 대학들과의 네트워크 부분에서 인사대는 상위를 차지한다. 나는 결국 인사대 어학당을 다니게 되었는데 사실 호치민에서 비자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인사대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게 이 학교를 선택한 직접적인 이유일 것이다. 호치민의 대학 중에서 베트남어 코스가 있는 대학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트남어 교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충분히 훈련된 교사가 있는 곳은 사설 학원까지 다 합해도 호치민에서 인사대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어를 한 글자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베트남어를 가르칠까?
한국 대학의 어학당에서는 클래스의 모든 학생이 한 개 나라에서 왔을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한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친다. 이것이 어학당의 기본 룰이다. 교실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있고, 학생들마다 영어 수준이 다르므로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면 누군가에게는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급반의 경우 교사는 손짓, 발짓, 그림, 영상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한국어로 한국어를’ 이해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초급 담당을 오래 하다 보면 말이 느려지고, 제스처가 크며 표정이 과장된다. 나는 평소에도 말이 느린 편인데, 초급 수업이 많은 분기에는 유독 말이 더 느려진다. 유튜브를 찍으면서 내 말이 느리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베트남 어학당에서는 영어로 베트남어를 가르친다. 몽골, 캐나다, 일본, 한국,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있지만 영어로만 베트남어를 가르치다 보니 영어를 모르는 학생들은 영어와 베트남어 두 개를 이해하느라 곤욕스럽다. (지금 내가 그렇다)
중국 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는 한국 어학당에서와 같이 교사가 중국어만 쓰는 게 원칙이었다. 당시 내가 공부하던 초급반에는 영어와 불어를 모국어로 쓰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셨지만 수업에서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으셨다. 다수의 학생들을 위한 개인의 배려이면서, 학교가 다년간 수업을 운영하면서 세운 원칙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는 베트남어 수업 시간과 비용 안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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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수업
중국 대학에서는 하루에 4시간씩 주 5일을 공부했었다. 그리고 초급반에서는 자모 발음을 익히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하루에 4시간씩 5일이므로 일주일이면 20시간을 공부하는 것인데, 발음만 1주 넘게 공부한 것이다. 사실 발음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발음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맞다. 한글의 경우, 교사마다 다르겠으나 나는 평균 7-9시간을 들여 한글 자모를 가르친다. 온라인 1:1 수업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다. 많은 학생들에게 발음을 가르친다면 더 많은 시간을 배분하여 가르치는 것이 맞다. 중국 학원에서 일할 때는 발음 강의에 12시간을 배분했었다.(학원에도 발음 강의는 몇 시간, 한 과는 몇 시간 등 진도표에 따른 시수 지침이 있다.)
그런데 이곳 베트남 어학당에서는 발음 강의를 두 시간만에 끝내버려서 적잖게 당황한 기억이 있다. 발음에 많은 시간을 배정하지 않고 진도를 나가면서 발음 강의를 보완하는 식이다. 여전히 나는 제대로 못 읽는 베트남어 자음과 모음이 많다. 베트남어 강의에서 좋은 점은 선생님들이 크게 진도에 쫓기는 모습이 없어서 자유롭게, 마음껏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자유롭게, 마음껏 질문할 정도로 베트남어를 잘한다면 말이다.)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한 명의 교사가 한 반을 통째로 맡아서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보통 두 명의 교사가 한 팀이 되어 한 반의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나눠서 가르치기 때문에 두 교사, 나아가서는 모든 초급반의 진도가 일치해야 한다. 학생들이 ‘다른 반에서는 이거 배웠다는데 왜 우리는 안 배워요?’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수업에서 다룰 문법과 활동, 교사들이 쓰는 용어까지도 급수별 선생들이 논의하고 공유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학생 수가 적기도 하거니와 급수별 반도 많지 않아서 교사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수업을 하는 듯하다. 이것은 화요일에 들어온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월요일에 어디까지 공부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교사 간에 수업 인수인계가 그날그날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날 무엇을 가르칠지 모르는데 수업 준비를 타이트하게 해 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이것을 볼 때 큰 틀에서 진도표는 있겠으나 교사 간 공유되는 교안이 없이 교사 개인 역량으로 수업을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